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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129

[창조의 CEO 세종] 문화는 나라의 경쟁력이다. 절대로 밀려서는 안된다 세종은 국가 경영을 예술의 수준으로 격상시킨 CEO였다. 이것은 그가 문화 인프라에 그토록 엄청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이다. 그가 신생 조선의 CEO로 재임한 시기는 6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는 지금 시대 최고경영자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경영상의 필수 요건을 갖추고 있었고, 그것을 경영 현장에서 실현해 냈다. 세종의 경영은 실로 ‘시대를 초월한 것’이었다. 그는 뛰어 넘을 수 있었고, 또 그 때문에 역사에 항구적으로 아로새겨졌다. 초월 경영을 이루어 내다 그의 이러한 ‘초월 경영’은 오늘날 국가나 기업의 경영자들에게도 반드시 요구되어 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나 한 두 가지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는 쉬워도, 전체적인 시스템ㆍ인프라를 갖추는 일을 해 내는 것은 지극히 어렵기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창조하라, 육성하라, 전파하라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것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때, ‘꽃이 핀다’는 말을 하게 된다. 세종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극적인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표현이다. 세종시대에는 어느 분야에서건 그야말로 ‘꽃 피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종 정부에 참여한 수많은 인재들로부터 그 아래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는 그야말로 국가경제와 정신ㆍ문화 등 모든 면에서 대 르네상스를 맞은 시기였다. ‘변화에 대한 통찰 +행동 =창조적 경영’의 법칙 그렇다면 세종시대의 이러한 창조적 원천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견해와 통찰력을 갖고 자신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세종에 의해 제시되고 주도되었다. 나아가 그의 탁월한 경영 능력과 감각이 빛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시대가 거대..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구체적인 데이터에 의한 경영을 하라 세계사적으로 볼 때, 15세기 초 세종시대 과학 및 IT기술 분야는 유럽ㆍ이슬람 및 중국의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일본의 기술과 비교해 보아도 적어도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 특히 달력 계산을 위한 수학과 물리학 분야는 고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종시대 이러한 과학기술이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것의 일부는 고려 시대부터 원나라를 통해 꾸준히 들어 온 이슬람 기술이었다. 이것이 조선 과학기술의 원형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은 앞서 얘기했듯, 오랜 시간 그리스 로마의 전통이 응축된 핵심(core)기술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들은 어떻게 해서 신생 조선에 들어 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세종의 부단한 벤치마킹과 아웃소싱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이슬람 과학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활인 경영: 인정(仁政)의 본말(本末)을 다하라 우리는 의료제도 시행 상 여러 가지 이견이 발생해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었던 적이 있다. 의학 분업 찬반 논란ㆍ파업ㆍ진료거부 등으로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은 의료행위에 직ㆍ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세종시대와 견주어 본다면, 이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은 세종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의 역사를 통 털어서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임진왜란 기간 동안에도 의원들은 피난을 다니며 환자들을 돌봤고, 스스로 병원을 지켰다. 바로 그와 같은 의료 행위뿐만 아니라, 의원들의 도덕적 의무감은 세종의 ‘백성사랑’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나라 의학계의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일반 백성..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IT의 정수는 이런 것이다 조선은 농업이 필수적인 나라였다. 따라서 ‘농시(農時)’ 즉,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는 때를 안다는 것은 농사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이터였다. 하지만 세종 전까지 우리나라는 자체적인 달력이 없어서 중국의 달력에 맞춰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만 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또, 자주 국가라는 자존심 또한 말이 아니었다. 이런 인식하에 세종은 당의 선명력과 원의 수시력을 비교 연구해 가장 베스트 요소만을 취합해 우리의 달력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달력인『칠정산 내ㆍ외편』은 나온다. 이는 비단, 농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과학과 IT 기술의 집합체는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 세종시대 모든 발명품ㆍ개발품에 그대로 녹아 흘렀다. 세종 시대 과학과 IT기술의 정수라고..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품질 경영의 모범을 만들라 활자뿐만 아니라, 출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종이다. 제지 능력과 기술은 출판에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세종은 서울에 조지소(造紙所) 를 두어 종이를 생산케 했다. 조지소란 지금으로 얘기하면 국영제지공장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서는 주로 제지기술과 합리적 생산관리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이 공장에는 염색공이 8명, 종이 제조사가 81명 근무하고 있었다. 또 전국적으로도 종이 생산에 관여한 엔지니어는 그 무렵 787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모두 법적으로 우대받고 생활이 보장되는 특권을 누렸다. 그만큼 조선의 종이 생산과 서적의 간행에 기울인 노력을 매우 컸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제지 강국 - 20세기 핀란드가 바로 이랬다. 그리하여 노키아(Nokia)라는 회사가 생겨났고, 그 후 이 회사는 세계적으로 유명..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