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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국주의 준비 일본의 군국주의 준비 일본은 선진 자본주의 열강이 제국주의로 이행하는 전야에 해당하는 1853년에서 1877년 사이 급격한 국가적 변화를 초래한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 함대의 사령관인 M.C.페리 제독이 개국(開國)을 요구하는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에 들어오자 이때부터 ‘유신(維新)’이 싹트기 시작한다. 일본은 1854년 미·일 화친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1858년 미국을 비롯해 영국·러시아·네덜란드·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조약은 천황의 칙허 없이 막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이후 반(反)막부 세력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 국면이 벌어진다. 1866년 막부가 패배하자, 이듬해인 1867년 일본에서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왕정복고)’이 일어나며 명치(明治)정부가 들어.. 2012. 8. 23.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일본이 역사상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한 공식적이며 대대적인 한반도 침략 행위를 분석해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국가 차원의 대대적 침략 준비 행위를 포함해 일본에 의한 주요 침략 행위 및 그에 맞선 우리 측의 대응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시점과 시차를 보인다. [왜(倭)의 국가적 침략 시점과 시차표] 침구시점 (침구대응시점) ㉠ 295년- 왜구 침구에 대한 신라의 왜구 근거지 정벌계획(실행안됨) 침구시차 (96년) ㉡ 391년- 왜와 백제군의 고구려 침공(실행) (6년) ㉢ 397년- 백제와 화통한 왜의 지원군이 신라국경 침범(실행) (10년) ㉣ 407년- 왜구 침구에 대한 신라의 왜구 근거지 정벌계획(실행안됨) (256년) ㉤ 663년- 왜 백제구원군의 백촌강 전투(실행) .. 2012. 8. 16.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1598년 임진왜란 실질 전쟁이 끝나고, 1607년 조․일 간 국교 재개가 이루어진 다음 269(278)년 후인 1875년(고종 12년) 일본은 운양호(雲揚號)사건을 일으킨다. 그 결과 일본은 이듬해 조선 정부에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체결하도록 강요한다. 이는 근대 일본이 조선 재침을 목적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침략 행위였다. 이때 일본은 부산에서 영흥만(永興灣)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해로를 측량하면서 함포(艦砲)시위를 벌였다. 또한 운양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재차 출동시켜 초지진(草芝鎭)을 지키던 수비병들이 발포하도록 유도한 다음 이를 빌미로 침략 행위를 자행했다. 일본 침략의 첫머리는 이렇듯 작은 분란을 통해 우리의 대응을 유도한 다음 자신이 피해자.. 2012. 8. 13.
2011년 한국 교과서 사건의 본질 2011년 한국 교과서 사건의 본질 여기서 잠시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2000년대 첫 10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한국 내에서 일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일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칭이나 용어는 국가의 위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명칭(용어)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사건’이 2011년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즉 2012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 ‘동아시아사’ 과목 2종(교학사, 천재교육 출판사 간행 예정)에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병자호란’·‘정묘호란’을 ‘병자전쟁’·‘정묘전쟁’으로 바꿔 기술해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명칭 변경에 대해 학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명칭 변경에 대한 한국 .. 2012. 8. 13.
지속가능 전쟁의 결정판: ‘임진왜란 7년 전쟁’ 지속가능 전쟁의 결정판: ‘임진왜란 7년 전쟁’ 1275년과 1281년의 ‘대(對)고려 침공 계획’이 무산되고 난지 311(317)년이 지난 1592년, 일본은 마침내 한반도에 대한 대대적 침략 전쟁을 개시한다. 이번에는 불발이 아니라 실질전쟁이자, 대대적인 국가 전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전쟁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미 전전(戰前) 몇 년간 일본은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전란 중 4년의 강화(講和) 기간을 포함하여 전쟁 상황이 7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초(超)장기전 양상이었다. 우리가 부르는 임진왜란 7년 전쟁이 이것이다. 임진왜란은 앞서 계획했던 두 번의 대대적인 정벌 계획처럼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하고 추진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오랜 왜의 한반도 ‘정토(征討) 계.. 2012. 8. 13.
왜(倭)의 이국정벌론: ‘대(對)고려 침공계획’ 왜(倭)의 이국정벌론: ‘대(對)고려 침공계획’ 일본의 ‘신라정토 계획’이 무산되고 난 다음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1271년 5월 들어 한․일 간에는 새로운 전란의 파고가 요동친다. 당시 고려는 대대적인 몽골의 침입을 받았는데, 몽골 침입군에 맞서 고려 삼별초는 최후의 거점인 진도에서 항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몽연합군의 공격에 함락되기 직전, 계속 밀린 삼별초는 왜의 막부에 첩장을 전달했다. 첩장의 내용과 목적은 뚜렷했다. 몽골이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 식량 및 병력 지원을 요청한다는 것, 연대해서 몽골 침입군을 막자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삼별초의 첩장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일본 막부에 의해 무시되고 만다. 대신 막부는 몽골 사신 조양필이 다자이후(太宰府)를 다녀간 1개월 .. 2012.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