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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46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직접적인 접점에 놓여있다. 이 점은 양국 관계에서 불가피한 지리적 여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라는 이유로 문명사적 교류도 활발했지만, 그로 인해 한반도는 왜구 침구의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어 왔다. 14세기 중엽부터 고려는 반원자주운동을 추진했으나, 40여 년 동안 계속된 홍건적의 침입은 서북지방으로부터 개경에 이르는 연도 인근의 제읍(諸邑)들을 모조리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먹을 것이 없는 극도의 기아 상태에서 백성들은 죽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 먹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이어 갔고, 시체를 파먹은 개들은 미쳐서 개경 시내를 어슬렁거릴 정도였다. 홍건적에 의한 피해도 컸지만, 왜구에 의한 침입과 피해는 이보다 규모나 횟수면에서.. 2015. 12. 30.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한중일 간에 있어 왔다. ‘왜구’라 함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고려사》는 왜구의 주체 세력이 누군지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일본 사신이 고려를 방문한 것은 공민왕 17년인 1368년, 왜(倭)의 승려 본토(梵盪)와 본류(梵鏐)가 방문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왜구 금지[禁寇]를 요청하는 고려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한 회답[回書]을 가지고 왔는데, 그 내용은 지금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377년(우왕 3년) 6월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안길상(安吉祥)이 일본에 갈 때 가지고 갔던 첩장(牒狀)을 통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첩장에는 고려 금룡(金龍)이 일본을 방문한 것에 대한 회답으로 왜측의 세이.. 2015. 12. 30.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료순의 정치공작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료순의 정치공작 1350년 ‘경인년 왜구’ 이후, 1360년대에는 왜구가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이 시기를 지난 1372년부터 고려에 왜구가 갑자기 크게 출몰한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시기는 1371년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이 규슈 단다이(九州探題)로 내려온 다음 해라는 특징이 있다. 왜구 재출몰은 이와 관련있다. 일본에서는 남북조 내란 말기에 북조(北朝)의 3대(代) 쇼군 아시카라 요시미츠(足利義滿)가 남조가 장악하고 있는 규슈를 탈환하기 위해 1370년 이마가와 료슌을 규슈 탐제로 임명한다. 탐제(探題)란 일본 무로마치(室町) 막부 시대 주요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장관을 말한다. 다음해 료슌은 일족의 장군들과 함께 규슈에 상륙해 이곳의 지.. 2015. 10. 20.
일본의 재침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재침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 왔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세력은 한반도 재침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광포한 욕망으로 1620년간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나 침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전쟁’으로 지금도 현재진행형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치밀하고 집요한 한반도 공략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인식은 고사하고 MB처럼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는 부왜적(附倭的) 사상이 극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사에 이 같이 망국적 발언이 횡행한 적이 있던가? 21세기 들어서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삶처럼 역사도 탄생기, 성장기, 전성기, 쇠락기가 존재하지만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에는 .. 2015. 9. 25.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세계제국 ‘원’의 침공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세계제국 ‘원’의 침공 이처럼 왜구를 무한 복제해 내는 일본 내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왜구가 우리나라에 대거 침구한 때는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시대와 남북조시대였다. 일본 중세에 해당되는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는 1185년 헤이시가(平氏家)를 멸하고 전국적인 지배망을 구축하게 된다. 이때 막부는 ‘수호와 지두(地頭)의 제(制)’를 실시한다. 수호(守護)란 모반, 살인자 등을 관장하는 관리를 뜻하고, 지두란 장원의 관리, 조세의 징수, 치안의 유지를 맡아 보는 직책을 말한다. 이는 미나모토노가 내란에 참가한 무사 계급을 주종 관계로 묶어 지배 질서를 확립한 것을 뜻한다. 그러다가 그가 죽자 정권은 처가 쪽인 호조씨(北條氏)에게.. 2015. 7. 29.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2) 지금 일본은 2차 대전 이래 가장 뜨거운 극우주의 열기로 들끓는 가마솥과 같다. 경제 성장이 가져온 경제대국화와 일본 내 경제적 불안정성과 잦은 자연재해, 그리고 잇따른 인재(人災)는 이 가마솥이 폭발의 행로를 찾아 새로운 팽창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팽창 기조를 일본은 1823년 사토 노부히로가 제안했던 ‘울릉도·독도 공략책’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독도문제의 역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구와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지금의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서로 빈틈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왜구를 다루는 것은 일본의 침구가 끝내 일본은 물론 주변 국가 모두의 불행이 되어 온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나아가 이 일이 단지 과거의 불행으로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 2015.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