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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연구소285

우리 모두는 하루살이다 한여름, 회사 워크숍차 찾아간 남한산성 숲속엔 매미들이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여름 한 철을 살기 위해 삼 년간 굼뱅이 시절을 겪어야 한다는 그 흔한 얘기는 집어 치우고, 그런 굼벵이나 매미나 다들 아득바득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사람 사는 것도 그와 전혀 다를 것 같지 않아 헛헛하기만 했다. 특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이 사회의 중심으로 살아온 40대라면 누구나 가끔은 그 허전함에 소줏잔도 기울일거라고 생각하니 40대 직딩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사회에 나와 근 이십여년을 뒹군 이 시간이 긴 것 같아도, 지내놓고나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이런 인생의 짦음은 구태어 역사책의 연대표에 비교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구태어 연표에 빚대어 본다면 대뜸 이같은 사실을 발.. 2010. 4. 13.
해녀들의 코칭 바다로 출근하는 여자 뭍의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 바삐 직장으로 향한다. 바다를 직장으로 삼는 해녀들에게도 출퇴근이란 게 있을까? 물론이다. 출퇴근만 있는 게 아니라, 휴가도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작업장소가 바다라는 점이다. 하루 일과는 바다에서 시작되고 바다에서 마무리 된다. 그런 까닭에 물결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다시 갯가로 들어오는 과정은 해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사이가 일을 위한 시간이며, 생명을 담보로 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해녀 코칭엔 바다로 나아가고 뭍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된다. 바다로 들고 나는 그 사이에 본격적인 ‘업무’인 채취활동이 기다리고 있다. 해녀들은 해변과 바다를 오가며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적응하며 훈련수위를 높여 나간다. 원숙한 역량을 발휘할 때쯤이.. 2010. 4. 13.
중국대륙을 M&A한 청태조 누르하치의 경영 비결 겨레의 숨결이 스며있는 광활한 만주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불과 1천 여 년 전에는 ‘천하 경영’을 앞세운 광대한 제국, 고구려가 역사의 중심으로 우뚝 솟았고, 그 후로는 불운한 조국, 발해가 이 땅에서 명멸해 갔다. 빈 땅엔 풀씨가 날아들 듯, 그 후로 이 땅은 영원히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랜 시간 중국의 압제를 받아 온 여진족이 초원의 잡초처럼 무성하게 일어났다. 금(金)에 이어 두 번째로 세운 나라가 청(淸)이다. 여진족의 청은 서쪽으로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명(明)과 맞닿아 있었고, 동남쪽으로는 임진왜란으로 피폐된 조선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청을 세운 이들 여진족은 강대국 틈바구니 숨어 보이지 않게 힘을 축적해 나갔다. 기나긴 굴욕의 세월 끝에 그들은 드디어 창업에 성공하게.. 2010. 4. 6.
왜, 지금 광개토태왕인가? 고구려를 세계제국으로 확장시킨 우리 역사상 최대영토를 개척한 태왕의 이름은 ‘담덕(談德)’이다. 중국 측 기록인 『진서(晉書)』에는 ‘안(安)’이라고 적혀 있다. 태왕은 374년에 태어나 제 18대 임금인 고국양왕 재위 3년(38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6년 뒤인 392년 5월에 제19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태왕의 큰아버지는 소수림왕이며, 아버지는 소수림왕의 동생인 고국양왕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기상이 늠름했으며, 뜻이 고상하고 성인(聖人)의 풍모를 지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나 권근의 『양촌집』에도 태왕이 “허우대가 매우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 “어렸을 때의 모습이 체격이 웅위하고 뜻이 높았다.”고 동일하게 전하고 있다. 기록.. 2010. 4. 6.
세상에, 산이 달라졌네 올랐던 산이 낯설어질 때는 산 아래에서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이다. 몇 해 지나 올랐던 산을 다시 올랐을 때, 뭔가 낯선 느낌에 젖을 경우가 있다.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세월에 따라 산도 달라졌겠지만 사실 산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이다. 산은 늘 그랬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지만 산꾼은 산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고 다시 산을 오른다. 인생사에는 숱한 변화가 찾아들고 산꾼의 삶과 사업은 그 회오리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산만이 홀로 제자리를 의연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산이 달라졌는가, 아니면 내가 달라졌는가? 산꾼 경영자는 산행을 하면서 산 아래에서 던졌던 화두를 다시 끌어안고 간다. 답을 찾지 못한들 어떠랴. 그들은 이미 산행만으로도 제.. 2010. 4. 3.
큰 나라 고구려: 고구려인들과 글로벌 리더십 제국적 국토영역은 고구려로 하여금 여러 부족이 연합한 국가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창업 이래 지속적인 확장의 결과였다. 고구려에는 소노부(消奴部)·절노부(絶奴部)·순노부(順奴部)·탁노부(濁奴部)·계루부(桂婁部)의 다섯 부족이 있었다. 평양으로 천도하고 부터는 혈연적인 오족제도(五族制度)에 지연적인 요소를 가미해 오부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고구려 사회는 대체적으로 혈연적 부족사회를 기반으로 했다. 부족제도에서 통치자는 부족들의 선거에 의해 결정되었다. 3세기 말엽 기록에는 처음에 소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뒤에 차츰 약해져서 계루부에서 대신 왕이 나왔다고 전한다. 또한 고구려는 적극적으로 서진정책을 펼쳐 요동(遼東)·현토군(玄菟郡)을 서쪽으로 후퇴하게 했다. 이런 활동의 결과 태조 때에 와서 고구려 영토는.. 2010.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