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강의195 웅포해전: 전투수행을 위한 협력체계를 강화하라 웅포해전: 전투수행을 위한 협력체계를 강화하라 부산포 해전 이후 5개월간 장군은 해상전투를 하지 않았다. 유능한 지휘관은 기다리는 동안 전략을 짠다고 하던가? 휴전상태에 있는 동안 장군은 새로 선박을 건조하고,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등 전력을 다했다. 또한 결원 인원 보충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다음 싸움을 위한 일대 점검 차원이었다. 그 무렵인 1593년 1월 22일과 25일, 선조는 두 차례에 걸쳐 장군에게 유서(諭書)를 내렸다. 명나라 이여송이 대군을 거느리고 평양, 황해도, 서울을 수복하려고 진군을 하면 왜군이 도망 갈테니 수군을 지휘하여 왜군의 귀로를 차단하고 전멸하라. 유서를 받은 장군은 모든 전선을 동원하여 본영 앞바다에 집결하도록 하고, 전라우도와 경상우도 수사에게도 합동으로 출전하도록 .. 2014. 9. 3. 부산포해전: 성공 혁신을 재혁신의 기회로 삼아라 부산포해전: 성공 혁신을 재혁신의 기회로 삼아라 승리를 재혁신의 기회로 삼으면 더 큰 승리이자,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승리에 이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일회성 승리로 끝나고 만다. 어느 기업이나 한 때는 잘 나갔었던 때가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자세이다. 부산포해전은 재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매우 뜻 깊은 전투이다. 장군은 성공적인 혁신을 안주가 아닌, 재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부산포 해전은 1592년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부산포 등지에서 치러진 전투를 말한다. 이 해전에서 장군은 적선 152척을 격침시키고, 6척을 불태운다. 이 해전은 이순신에게 과거의 전투를 돌아보고 이를 보완하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 3차.. 2014. 8. 26. 부산포해전: 성공 혁신을 재혁신의 기회로 삼아라 부산포해전: 성공 혁신을 재혁신의 기회로 삼아라 승리를 재혁신의 기회로 삼으면 더 큰 승리이자,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승리에 이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일회성 승리로 끝나고 만다. 어느 기업이나 한 때는 잘 나갔었던 때가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자세이다. 부산포해전은 재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매우 뜻 깊은 전투이다. 장군은 성공적인 혁신을 안주가 아닌, 재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부산포 해전은 1592년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부산포 등지에서 치러진 전투를 말한다. 이 해전에서 장군은 적선 152척을 격침시키고, 6척을 불태운다. 이 해전은 이순신에게 과거의 전투를 돌아보고 이를 보완하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 3차.. 2014. 8. 20. 이순신 수군, 구체적 성과를 내다 이순신 수군, 구체적 성과를 내다 전투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밀린 육전과 달리 이순신이 이끈 바다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조선 육군이 막지 못한 일을 수군이 해낸 것이다. 장군은 전쟁이 일어난 임진년 5월에는 당포, 옥포, 사천 전투를, 한 달 뒤인 6월에는 당항포, 율포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율포해전은 특히 장군 스스로 장계에서 “여러 전선의 장수와 군사들은 마음이 상쾌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있는 걸로 봐서 깔끔한 승리로 마무리된 전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 7월에는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해전에서 적을 수장(水葬)시켜 버렸다. 한산도로 본영을 옮긴 것은 이듬해인 1593년 2월 웅천와 제포에서 승리를 거두고 남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이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거제도까지 본거지로 삼은.. 2014. 8. 12. 문익점이 원에 파견된 배경 문익점이 원에 파견된 배경 이른바 잘 나가던 문익점이 일생일대의 대변혁을 겪게 된 것은 역사적 우연이자 필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홍건적의 난이 전 국토를 휩쓴 혼란의 시기에, 문익점의 인생도 당초 궤도를 크게 벗어나 남다른 역사적 임무를 맡게 된다. 불행으로 다가왔으나 행운이었고, 일생일대의 기회이기도 했다. 계품사 이공수와 함께 서장관으로 원에 특사로 파견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이른바 공민왕 폐위사건으로 알려진 일대 반역행위를 바로잡고, 외교적 노력으로 사건을 풀고자 한 국왕의 명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려를 뒤흔들어놓은 공민왕 폐위사건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세계 제국을 이뤘던 원이 쇠퇴하면서 중국은 끊임없는 반란으로 매우 혼란했다. 주원장(朱元璋), 진우량(陳友諒), 명옥진(明玉珍.. 2013. 3. 11. 혁신을 가져온 한 알의 씨앗 혁신의 탄생 1364년(공민왕 13) 10월, 북쪽에서 몰아치는 국경의 칼바람을 등에 지고 한 사나이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다. 초겨울 매서운 바람은 몸을 날릴 듯 거셌지만, 그의 가슴에는 희망의 열기가 뜨겁게 솟구쳤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춘 그는 품속의 작고 특별한 물건을 더듬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옆에서 따라 걷던 시종 김룡이는 맵짠 추위에 갈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사나이는 이미 지나온 만주 들녘과 앞으로 가야 할 개경 쪽을 차례로 굽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잦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굶주리며 추위에 얼어 죽어가던 길가의 백성들! 한겨울에도 그들이 걸친 거라곤 엉성한 베옷과 갈옷, 도롱이가 전부였다. 처참한 백성들의 삶을 생각하며 감았다 뜬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이켜보.. 2013. 3. 4. 이전 1 ··· 3 4 5 6 7 8 9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