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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메 그린다 그리메 그린다 그림 같은 삶, 그림자 같은 그림 책소개 그림자 같은 그림이 삶 아니더냐? 경제・경영, 인문,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저술 활동을 해온 저자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이 그림을 생업으로 삼은 조선 화가들의 옛 그림을 보며, 그들 삶의 흔적을 더듬어 낸다. 그림자 뒤에서 올곧이 삶을 끄집어낸다. 그림이란 무엇이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는 자들은 누구인가? 김홍도, 김명국, 윤두서, 심사정, 신윤복 등 붓으로 한 인생 휘적이다 간 조선의 화가들. 모두가 자기식대로 살았고, 자기식대로 그림을 그린, 그리하여 그림으로 환생한 환쟁이들이다. 삶의 결은 각기 다르나 이들이 붓으로 전한 목소리는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들린다. 이들 조선 화가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 2012. 9. 17.
세익스피어를 읽으면 사람과 경영이 보인다 세익스피어를 읽으면 사람과 경영이 보인다 꿈과 인간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네. - 세익스피어, 《템페스트》 무더운 날씨에 대야에 발을 담그고 세익스피어의 을 읽노라면, 더위도 잊게 될 것이다. 고전을 읽지만, 고전은 옛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경영의 웅대한 가르침이 된다. 책 속의 인물을 통해 사람에 대해 안다면, 모든 비즈니스는 다 성공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 게다. 고객 이전에 사람일 테고, 사람 속에 모든 경영적 지향이 다 들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읽는 작업은 '사람읽기'가 아닌가 한다. 세계적인 사운드 시스템 업체인 하먼 인터내셔널(Harman International)의 CEO인 시드니 하먼(Sidney Harman)이 세익스피어 광(狂)인 것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 군상을 .. 2012. 9. 13.
해양 리더십은 생존의 조건, 바다를 경영한 장보고 리더십 해양 리더십은 생존의 조건, 바다를 경영한 장보고 리더십 해상왕 장보고(張寶高)의 본명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로 알려진다. 풀이하자면,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다. 그는 본래 신라의 평민 출신으로 변변한 가문은 아니었으나, 자신만의 입지전적인 노력을 통해 해상왕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가 국제적 인물로 부각된 데에는 해외활동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는 청년기에 좁아터진 신라가 아닌, 국제사회에 눈을 돌렸다. 당나라에 건너가 장교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성씨인 장씨(張氏)도 이때 얻은 것이다. 당시 당나라는 각지에 지방 군벌들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 무렵 토벌 과정에서 서서히 이름을 얻게 된다. 그는 이때 얻은 용병술을 육전에만 적용하지 않았다. 이를 해상에 적용시킴으.. 2012. 9. 13.
지구상 발견, 마침내 조선에 이르다 지구상 발견, 마침내 조선에 이르다 조엄의 통신사 일행은 1763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육로로 8월 23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포를 출발한 133일 째인 1764년 2월 16일에 일본 에도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 첫 일본 기항지가 대마도 북단 사스우라였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곳에서 고구마를 처음으로 본 조엄은 이 뛰어난 식량대용 작물을 부산포로 가는 대마도 비선(飛船)편에 즉각 보낸다. 해를 넘기면 재배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재배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후 고구마는 조선 전래 직후부터 조정과 민간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모으며, 종자 보급과 함께 재배법이 상세히 소개된다. 이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식물’이라는 최고의 구황작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많은 사.. 2012. 9. 11.
고구마, 사고의 전환이 가져온 위대한 발견 고구마, 사고의 전환이 가져온 위대한 발견 인생에선 때로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항해에 나섰다가 신대륙을 발견했듯, 우연한 기회에 찾아지는 행운을 흔히 ‘영민한 발견(serendipity)’이라고 부른다. 부산을 떠난 조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난생 처음 접하는 새로운 발견으로의 초대였다. 조엄 일행은 1763년 10월 6일 대마도에 도착해 5일 동안 사스우라에 머물게 된다. 이 때 조엄은 조선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대의 구원투수를 만나게 된다. 바로 고구마였다. 고구마를 처음 본 순간, 조엄은 그것이 구황작물로 이용후생에 가치가 높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는 즉시 고구마의 생태・맛・재배법・저장법 등을 상세히 탐문하여 기록하고,.. 2012. 9. 10.
조엄, 일본에 가다 조엄, 일본에 가다 조엄이 대일통신사로 파견될 즈음 조선은 수년간 흉년으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백성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고, 국가적으로도 재정 및 경제상 어려움이 컸다. 특히 1757년(영조 33)에는 서울에만 굶주려 죽는 자가 8,700명에 달했고, 자작농들은 당장 허기를 면하기 위해 지주들에게 토지를 넘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763년 3월에는 곡창지대인 호남에서도 48만 명의 기민이 발생했다. 또 아사자가 450여 명이나 되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다. 이에 국왕 영조는 기민들을 불러 직접 처참한 참상을 듣고, 자신의 반찬을 줄이도록 명했다. 또한 소의 도살을 엄금하였으며 궁중에서 사용하는 연여(輦與) 장식에 금 대신 주석을 사용하라며, 사치 풍조를 금하는 금사령(禁奢令)을 공포하였다. .. 2012.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