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004 한산대첩: 개별 승리보다는 전체 판세를 뒤집어라 한산대첩: 개별 승리보다는 전체 판세를 뒤집어라 한산대첩은 임진년 7월 6일부터 13일까지 8일간에 걸쳐 견내량 및 안골포에서 적선 89척을 격침시키고, 12척을 나포한 쌍방 간 교전이 치열했던 대전이다. 견내량 해전은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주력함대 73척과 이순신 함대 56척간 결전이었다. 견내량은 지형이 좁고, 암초가 많아 판옥선과 같은 큰 배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 지형으로만 놓고 본다면 당연히 조선수군에게 불리했다. 불리한 지형을 장군은 혁신적 전법으로 돌파한다. 나라의 운명을 건 대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저 유명한 혁신전법인 ‘학익진법(鶴翼陣法)’이 전면 등장하는 것이다. 원래 학익진은 육전에서 발전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해전에 맞게 일부 변용되어 이용되어 왔다. 육지에서.. 2012. 9. 4. 태풍 위기관리 능력 제12법칙: ‘언제나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복제’의 법칙 -해마다 되풀이 되는 같은 위험을 넘기고도 다음 해에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이면 한반도에 몰아치는 태풍과 그 피해는 오랫동안 겪어온 재난의 유형이며, 이에 대한 대책은 해마다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다분히 인재에 적잖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풍 ‘루사’와 ‘매미’는 이에 대한 적절한 예에 해당될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태풍의 영향권 내에 있다. 어쩌다 운이 좋아 피해 간다고 해도 그것은 요행수일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바꿀 수 있는 변수가 아닌, 상수에 해당된다. 태풍은 매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지만, 우리에게는 재난으로 다가온다. 피해액도 .. 2012. 8. 27. 일본의 군국주의 준비 일본의 군국주의 준비 일본은 선진 자본주의 열강이 제국주의로 이행하는 전야에 해당하는 1853년에서 1877년 사이 급격한 국가적 변화를 초래한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 함대의 사령관인 M.C.페리 제독이 개국(開國)을 요구하는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에 들어오자 이때부터 ‘유신(維新)’이 싹트기 시작한다. 일본은 1854년 미·일 화친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1858년 미국을 비롯해 영국·러시아·네덜란드·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조약은 천황의 칙허 없이 막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이후 반(反)막부 세력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 국면이 벌어진다. 1866년 막부가 패배하자, 이듬해인 1867년 일본에서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왕정복고)’이 일어나며 명치(明治)정부가 들어.. 2012. 8. 23.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일본이 역사상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한 공식적이며 대대적인 한반도 침략 행위를 분석해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국가 차원의 대대적 침략 준비 행위를 포함해 일본에 의한 주요 침략 행위 및 그에 맞선 우리 측의 대응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시점과 시차를 보인다. [왜(倭)의 국가적 침략 시점과 시차표] 침구시점 (침구대응시점) ㉠ 295년- 왜구 침구에 대한 신라의 왜구 근거지 정벌계획(실행안됨) 침구시차 (96년) ㉡ 391년- 왜와 백제군의 고구려 침공(실행) (6년) ㉢ 397년- 백제와 화통한 왜의 지원군이 신라국경 침범(실행) (10년) ㉣ 407년- 왜구 침구에 대한 신라의 왜구 근거지 정벌계획(실행안됨) (256년) ㉤ 663년- 왜 백제구원군의 백촌강 전투(실행) .. 2012. 8. 16.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1598년 임진왜란 실질 전쟁이 끝나고, 1607년 조․일 간 국교 재개가 이루어진 다음 269(278)년 후인 1875년(고종 12년) 일본은 운양호(雲揚號)사건을 일으킨다. 그 결과 일본은 이듬해 조선 정부에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체결하도록 강요한다. 이는 근대 일본이 조선 재침을 목적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침략 행위였다. 이때 일본은 부산에서 영흥만(永興灣)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해로를 측량하면서 함포(艦砲)시위를 벌였다. 또한 운양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재차 출동시켜 초지진(草芝鎭)을 지키던 수비병들이 발포하도록 유도한 다음 이를 빌미로 침략 행위를 자행했다. 일본 침략의 첫머리는 이렇듯 작은 분란을 통해 우리의 대응을 유도한 다음 자신이 피해자.. 2012. 8. 13. 2011년 한국 교과서 사건의 본질 2011년 한국 교과서 사건의 본질 여기서 잠시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2000년대 첫 10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한국 내에서 일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일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칭이나 용어는 국가의 위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명칭(용어)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사건’이 2011년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즉 2012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 ‘동아시아사’ 과목 2종(교학사, 천재교육 출판사 간행 예정)에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병자호란’·‘정묘호란’을 ‘병자전쟁’·‘정묘전쟁’으로 바꿔 기술해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명칭 변경에 대해 학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명칭 변경에 대한 한국 .. 2012. 8. 13. 이전 1 ··· 64 65 66 67 68 69 70 ··· 168 다음